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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3. 22.

    by. 오늘도00

    목차

      레슬링 올림픽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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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슬링의 올림픽 역사

      레슬링은 고대 올림픽부터 함께 해온 종목 중 하나입니다. 고대 올림픽은 BC 776~AD 393년 사이에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렸던 축제형식의 스포츠 행사였습니다. 레슬링은 BC 708년 제18회 대회부터 열린 고대 올림픽의 핵심 종목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스포츠 중 하나라고도할 수 있습니다. 레슬링과 올림픽의 인연은 근대 올림픽에서도 계속됐습니다. 1896년 아테네에서 열린 제1회 근대 올림픽부터 그레코로만형 레슬링( 팔과 상체만 쓰는 종목)이 열렸고 온몸을 사용해 공격할 수 있는 자유형 레슬링도 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에서 데뷔했습니다. 여자 자유형 레슬링은 처음 레슬링이 도입된 아테네에서 2004년 정식 종목으로 포함됐습니다. 

      레슬링의 올림픽 퇴출 위기

      역사와 전통이 깊은 레슬링이지만 올림픽에서 퇴출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국제 올림픽 위원회는(IOC)는 지난 2013년 2월, 집행위원회를 열어 2020년 도쿄 올림픽부터 레슬링을 핵심 종목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동안 레슬링은 극심한 편파 판정과 부정부패 논란이 있어왔고 IOC의 개혁 권고에도 별다른 변화를 모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퇴출 예비 통보'라는 충격적인 결과지를 받고 나서야 세계레슬링협회에서는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규정을 대대적으로 손보고 집행부를 교체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펼쳤고 레슬링은 겨우 2013년 9월 8일 제125차 IOC 총회에서 2020년 도쿄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재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2024 파리올림픽에서는 남자 그레코로만형, 남자 자유형, 여자 자유형 3개 종목, 6개 금메달을 두고 경쟁을 펼치게 됩니다.

       

      경기 규칙

      직경 9m의 원형 매트에서 펼쳐지는 레슬링은 3분씩 2번 경기를 치러 많은 득점을 기록한 선수가 승리하는 경기입니다. 득점은 기술 난도에 따라 차등 배분됩니다. 상대 선수를 매트 밖으로 밀어내면 1점, 상대 선수의 등이 매트에 닿도록 하거나 테이크다운을 하면 2점, 서 있는 상태에서 상대방을 던지면 4점, 상대방을 들어 올려서 던지면 5점이 주어집니다. 점수차가 많이 벌어지면 남은 시간과 상관없이 경기가 종료되는데 레코로만형은 8점 차, 자유형은 10점 차가 기준입니다. 코치들은 야구나 배구처럼 심판의 판정이 오심이라는 판단이 들면 비디오 판독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비디오판독 신청은 정말 신중하게 요청해야 합니다. 기회는 단 한 번뿐인 데다 비디오판독에서 오심이 아닌 올바른 판정이라는 결과가 나오면 상대 선수에게 1점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복싱의 'KO'와 비슷한 승리법도 있습니다. 1초 동안 상대 선수의 양쪽 어깨를 매트에 닿게 하면 남은 시간에 상관없이 즉시 승리가 확정되는데 이를 '폴승(Victory by a fall)'이라고 합니다. 

      그레코로만형 vs 자유형

      올림픽에는 총 2가지 형식의 종목이 있는데 두 종목의 가장 큰 차이점은 공격할 수 있는 신체 부위에 있습니다. 그레코로만형은 상대를 허리 위로만 붙잡고 팔과 상체만으로 공격해야 합니다. 반면 자유형은 상대 선수의 신체 어느 부위든 공격할 수 있고 공격 시 손과 팔 뿐 아니라 다리를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 차이점은 패시브 페널티 발생 횟수입니다. 소극적으로 경기 운영을 하는 선수에게 패시브 페널티가 주어지는데 이걸 받은 선수는 그라운드에 엎드려서 시작하고 상대는 20~30초 동안 공격이 가능합니다. 공격하는 선수는 허리를 감싸서 들어 올리거나 뒤집기를 해서 상대 선수의 등을 매트에 닿게 해 득점하도록 합니다. 그레코로만형에서는 이런 경우가 종종 발생하지만 자유형에서는 선수가 매트에서 도망치려고 할 때 아주 가끔 발생합니다. 

       

      한국 레슬링의 올림픽 역사 

      레슬링은 전통적으로 올림픽에서 메달이 당연시되는 효자 종목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 시작은 무려 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장창선 선수가 은메달로 레슬링 첫 메달을 따냈고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는 더 위대한 기록이 탄생합니다. 양정모 선수가 한국 스포츠 역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선 것입니다. 이후 한국 레슬링은 매 올림픽마다 금메달을 따내며 전국민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한국 레슬링의 최전성기를 만들어낸 이는 '작은 거인'심권호입니다. 그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그레코로만형 48kg급 금메달을 땄을 뿐 아니라  그랜드슬램(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아선수권, 아시안게임 모두 정상에 오르는 것)까지 달성했습니다. 더 놀라운 건 4년 후에 일어났습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는 48kg급이 사라지고 6kg이 높은 54kg급이 생겼습니다. 레슬링 선수에게 6kg은 엄청난 차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심권호는 모든 고통과 좌절을 이겨내고 시드니에서 다시 한번 금메달을 차지합니다. 이 체급에서도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심권호는 전 세계 최초로 두 체급에서 모두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며 여러 프로스포츠의 발전과 함께 힘든 운동환경과 열악한 지원 속에 선수층이 얇아지며 하락기를 걷기 시작합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선 금메달을 하나도 따내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2012 런던올림픽에서는 그레코로만형 66kg급 김현우 선수가 눈 부상을 딛고 투혼을 발휘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나 2020 도쿄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설상가상 2020 도쿄올림픽은 금메달을 넘어 단 한 개의 메달도 획득하지 못하고 '노메달'로 대회를 마쳤습니다. 2024 파리 올림픽에서 다시 한번 메달 소식을 전해주겠다며 땀방울을 흘리고 있는 한국 레슬링 국가대표 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