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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3. 16.

    by. 오늘도00

    목차

      복싱 올림픽 역사

       

      복싱의 올림픽 역사

      복싱은 두 선수가 링에서 서로 맞붙어 싸우는 종목으로 고대 수메르 유적  유적에서 발견된 석판 등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3천 년 전에 시작됐습니다. 이후 발견된 고대 복싱 관련 기록으로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부조(기원전 2000여 년 전의  것으로 추정)와 고대 이집트 제18왕조의 무덤에서 발굴된 권투시합 장면 등이 있습니다. 복싱은 고대 올림픽부터 도입되었는데 그 시기가 기원전 688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선수들은  글러브 대신 부드러운 가죽 끈을 그 주위에 감싸 손과 팔목을 보호했습니다. 지금과 같은 라운드 개념이 없고 상대가 항복을 표시하거나 의식을 잃을 때까지 싸워 잔인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사각이 아닌 둥그런 원 안에서 경기를 벌였고 링(ring)이라는 용어도 여기에서 유래했습니다. 근대 복싱은 1880년 영국 아마추어 복싱 협회가 창설되며 시작되었습니다. 초기에는 54kg 이하의 밴텀급, 57kg 이하의 페더급, 63.5kg 이하의 라이트급, 73kg 이하의 미들급, 무제한급인 헤비급 등 5가지 체급으로 구성됐습니다. 복싱은 크게 프로 복싱과 아마추어 복싱으로 나뉩니다. 프로권투는 대전료(Fight Money)를 목적으로 하는 상업적인 스포츠이고 한국에서는 한국권투위원회에서 주관하는 프로테스트에 합격해야 프로선수로서 활동할 수 있습니다. 프로의 경우 헤드기어와 러닝셔츠를 착용하는 아마추어 복싱과는 달리 상의를 탈의하고 트렁크를 착용하고 경기 시간은 1라운드(R) 3분입니다. 복싱이 근대 올림픽에 데뷔한 것은 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에서 입니다. 1904 대회에서 복싱 종목에 참가한 국가는 미국이 유일했기 때문에 모든 메달을 미국이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이 대회에서는 독특한 기록도 있는데 올림픽 역사에서 유일하게 한 선수가 2 체급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는 점입니다. 이 대회에는 미국만 출전했던 데다 한 선수가 두 체급에 출전이 가능해 조지 커크가 출전한 밴텀급과 페더급에서 모두 우승해 유일한 한 대회 두 체급 우승자가 됐습니다. 이후 복싱은 1912 스톡홀름 올림픽을 제외하고 모든 하계 올림픽에서 열렸습니다. 여자는 2012 런던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습니다. 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복싱 메달을 가져간 국가는 미국입니다. 미국은 1904년 대회부터 2020 도쿄 대회까지 금메달 50개를 포함해 총 117개의 메달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대회에서는 미국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우수한 선수가 올림픽을 기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6 리우 올림픽부터 프로 선수에게도 올림픽 출전이 가능해졌지만 수많은 정상급 선수들은 부상 위험과 경기 스케줄 때문에 올림픽에 출전하지 않고 있습니다. 

       

      올림픽에서의 복싱 규칙

      체급

      올림픽에서는 중량에 따라 체급을 나눠 경기를 하는데 남자는 8 체급(플라이급(48-52kg), 페더급(52-57kg), 라이트급(57-63kg), 웰터급(63-69kg), 미들급(69-75kg), 라이트 헤비급(75-81kg), 헤비급(81-91kg), 슈퍼 헤비급(+91kg))으로 나눠집니다. 여자는 5개 체급 (플라이급(48-51kg), 페더급(54-57kg), 라이트급(57-60kg), 웰터급(64-69kg), 미들급(69-75kg))으로 나뉘어 경기를 합니다.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는 남자 10개 체급, 여자 3개 체급으로 구성되었지만 2020 도쿄올림픽에서는 남자 8개, 여자 5개 체급으로 조절되었습니다. 

      경기 규칙

      프로복싱의 12라운드와는 달리 올림픽에서는 3분 3라운드로 진행하는데 남녀 모두 경기 시간은 동일합니다. 심판은 5명으로 구성되는데 링 옆에서 경기를 지켜보며 점수를 줍니다. 주심은 경기를 진행 중 경기를 더 이상 지속시킬 수 없다는 판단이 들 경우 종료시킬 수 있는데 선수가 바닥에 쓰러지지 않아도, 주심의 판단하에 녹다운을 외칠 수 있습니다. 또한 선수가 3회 경고를 받거나 10초 이내에 경기를 재개할 수 없을 때도 경기는 종료됩니다. 10초 이내에 경기를 재개할 수 없다면, 녹아웃(KO)으로 간주됩니다. 3라운드가 끝나도 승부가 결정되지 않을 경우에는 심판들의 판정으로 순위가 결정됩니다. 준결승에서 패하면 3/4위전 없이 2 선수 모두에게 동메달을 수여하기 때문에 다른 종목에 비해 동메달이 한 개가 더 많습니다.  또한 IOC는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 연령을 제한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파리 올림픽 출전이 좌절된 파퀴아오 선수가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IOC는 2013년 올림픽 복싱 종목의 출전할 수 있는 선수의 연령을 40세로 상향했지만 파퀴아오는 1978년 12월 17일생으로 40세가 넘어 출전이 불발됐습니다. 파퀴아오가 만들어낸 기록은 엄청납니다. 8 체급에서 12개 세계 타이틀을 획득했고 통산 전적은 72전 62승(39KO) 2 무 8패입니다. 이런 대단한 파퀴아오도 올림픽에는 한 번도 출전하지 못했는데 앞으로도 나이 때문에 올림픽에서는 더이 상 그를 볼 수 없게 됐습니다.

       
      한국 복싱의 올림픽 역사

      복싱은 한국 스포츠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광복 이후 태극기를 앞세워 처음 출전했던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부터 메달을 따낸 종목이기 때문입니다. 한수안 선수가 1948년 런던 올림픽 플라이급에 출전해 동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이후 꾸준히 메달을 따내며 효자 종목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했습니다.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는 강준호 선수가,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는 송순천 선수가,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는 정신조 선수가 각각 은메달을 따냈습니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는 장규철이 동메달을 추가했습니다. 한국 복싱의 최고 황금기는 1980년대입니다. 1984년 LA올림픽미들급에 출전한 신준섭 선수가 한국 복싱 사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선물했습니다. 이어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웰터급 박시헌과 플라이급 김광선이 나란히 금메달을 차지하며 복싱 강국으로 떠올랐습니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는 12 체급을 모두 석권하는 대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서며 한국 복싱은 쇠락했고 1988 서울 올림픽 이후 지금까지 금메달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